공사장

두 시간을 운전했는데 하필 이날 서원이 문을 열지 않았다. p는 서원의 낮은 담벼락을 따라 조금 걷는 것으로 위안 삼을 수 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앞뒤 없이 찾아간 곳이지만 늘어지는 햇살 정도로 여유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p는 여유를 떠올리기도 전에 조급증을 느꼈다.  서원을 알리는 갈색 표지판이 눈에 띌 때부터였다.

'빨리 찍고 빨리 뜨자.'

P는 담배를 빼어 들었다. 여유와 함께 따라다니는 이 심증 心症에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그것은 늘 마음에 중심을 잡은 주인이고 여유는 고작 잠시 찾아온 손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조급증은 p를 더욱 피로하게 했다.
돌아갈 길과 시간을 가늠하다가 어느 소도시의 폐교 리모델링 뉴스를 읽었다. p는 그가 보아왔던 여러 폐교 사진과 색의 톤을 떠올리며 운전대를 잡았다. 몇 번의 유턴을 거치고 차 한 대가 간신히 빠져나가는 골목을 통과하여 공사 중인 폐교를 발견했다. p는 자기 내부의 활기를 느꼈다. 이미 머리에 자리 잡은 '이미지'가 줄을 섰다. 카메라 두 대를 챙겨 들고 차에서 내렸다.

-뭘 하는 분이세요?

살집이 느껴지기 시작한 중년 여성이 나타났다. 어느 쪽에서 나왔을까. 틀림없이 저 어둠 속 뒤로 물러나 있는 중앙 현관 쪽일 것이다. 여인의 뒤쪽에서 레이어 한장이 비죽이듯이 커다란 개가 나왔다. 햇빛에 가는 눈을 뜨고 있었다.

-지나가다 들렀습니다. 사진을 좀 찍으려고 합니다. 괜찮을까요?
-여기 주민은 아니시죠?

p는 여자의 목소리에서 경계심을 느꼈지만 '괜찮다'라는 감이 왔다. 손을 앞으로 모아 잡고 단정한 표정에 단정한 목소리다. p는 숱한 사람을 만나며 얻은 경험에서, 사람의 첫인상은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기름지거나 쇳소리가 나거나 높거나 낮거나 강하거나 약하거나 빠르거나 늦거나 등등. 그녀는 시청 공무원으로 폐교 리모델링 공사를 점검하는 중이었다. 이곳은 리모델링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도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고 했다. 카메라에 경계심을 품은 것도 민원인이 찾아온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p는 서원을 찾아갔지만 문이 닫혀 있었으며 오는 길에서 본 몇몇 축제 안내, 꾸불꾸불한 골목길 등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신통할 정도로 잘 응대했으며 십여 분이 지나자 서로 웃음을 나눌 정도가 되었다.  공무원 특유의 딱딱함도 있었지만, 손뼉 치듯 손을 모으는 자세와 렌즈를 바라보는 부드러운 눈길에 p는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일하시는 분들은 찍지 마시고요. 옥상도 올라가시면 안 됩니다. 난간이 무너져서 위험해요.

-네. 감사합니다. 20분 정도면 될 겁니다.

p는 교실과 계단, 옥상 입구에서 주로 사진을 찍었다. 민원은 아마 밤중에 이곳을 찾는 근처 불량배나 학생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의 기물들은 대부분 치워진 상태라 p가 그려둔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중앙 현관 쪽으로 다시 나왔을 때는 그녀는 없었다. 공사장 주변은 햇살이 더욱 늘어져 있었고 카메라가 걸린 p의 어깨는 조금 처져 보였다.
여인을 따라왔던 커다란 개는 공사장 모래판에 기대어 늘어지는 햇살에 실눈을 뜨고 있었다. p는 천천히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p의 느린 손길은 조급해 보이지 않았다.

 

이미지 맵

별거없다

▒▒▒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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