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투리

 

2016-1月. 제주

 

 

 

작은 녀석을 지하철 역에 내려주고 바로 출근했다. 오랜만에 봉다리 커피를 마셨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은 시공時空의 여유라는 쾌감을 준다. 

봉다리 커피가 허무하게 사라지자 100% COFFEE PURE BLACK 라는 노란색이 박힌 커피를 탔다. 봉다리가 선정적이다.

벅스에 접속하여 Boy George의 'The Crying Game'을 다운 받았다. 역시나 시작이 멋지다.

 

아직 방학 짜투리가 남았다. 이미 업무는 정해졌고 일상의 바닥에는 두려움이 잔잔히 깔려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번은 그렇다.

어젯 밤에는 영화 《The Crying Game. 1992》 을 봤다.  오래전 영화관에서 봤던 그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당시에는 그 불쾌한 장면이 모~~~든 내용을 덮어버려서 다른 기억이 없었다. 다만, 도대체 이런 불쾌감을 주는 영화를 만든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니 꽤나 근사한 영화임을 알겠다. 불쾌감 역시도 감상된 요소라는 것에 내 안목은 성숙했지만,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까닭은 아직 모르겠다. 이유를 말하면, 영화의 재미가 떨어질지도...

최근에는 졸린 눈 비벼가며 《살인자 O 난감》도 봤다.  자경단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가책을 느끼는 자'와 '가책이 없는 자'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지하게 잔인하고 야하다. 사운드도 살짝 깔아놓아서 그 강도가 높다.

그리고....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도 다시 봤다.  내친 김에 다나베 세이코의 원작을 다시 읽었는데(아주 짧다) 원작과 영화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조제, 호랑이, 물고기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더라. 희망을 버린다는 사전적 의미로, 우리는 보통 체념諦念을 부정적으로 본다.  그렇지만 체념을 현재의 상태를 받아들이는 태도로 폭을 넓히거나 희망과 욕망을 구분하지 못하는 심적 상황이라면 체념은 때로 현명하다. 조제는 상대에게 신경질 적이지만 감정에 솔직하고 자신의 처지에 의연하다. 조제의 강함은 체념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소설과 영화는 다른 작품이지만, 나는 소설이 더 좋다. 

 

큰 녀석이 자기 방에서 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내놓고는, 기숙사로 들어갔다. 짐이 많아서 기숙사까지 옮겨다 주었는데 건물이 참 마음에 들었다. 교내에 있는 기숙사에는 배정 받지 못하고 학교와 좀 떨어진 곳이라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곳인가 싶었다. 짐을 넣어주고 기숙사 앞에 있는 고깃집에 가서 둘이서 삼겹살을 먹었다. 해 줄 말이 따로 없어서 두 가지만 얘기했다.

 

용돈 떨어지면 바로 얘기하고,

변기 막히게 했으면 네 녀석이 해결해라.

 

그리고 남은 것들....

 

짜투리 일주일,

「차이에 관한 생각」 완독,

「작은 인간」 밑줄 재독...

그리고 출사 2회.

15분 뒤 연수 시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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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없다

▒▒▒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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