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이다.
크고 작은 붉은 원이 돌아간다.
누구냐에 따라 원의 크기는 다르다. 꼬맹이들은 무릎을 굽히고 깡통을 돌린다.
제법 머리가 굵은 녀석들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깡통을 돌리며 가끔 동생들 쪽을 돌아본다.
아이들 어른들 모두 그 절벽을 돌빵구라고 부른다.
멀리서 보면 절벽처럼 보이지만 돌아서 올라가면 그 위는 평평하다.
돌빵구.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지만
돌빵구 아래 시커먼 나무. 검은 샘물.
제국주의 시대.
사연 있는 어느 아낙이나 마을에서 쫓겨나던 일본인이 목매 죽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그런 전설 하나쯤 있을 법한 곳.
아니
그 이전 수천 년. 황제가 군대를 보냈던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서둘러 저녁을 먹은 아이들은 하나 둘 돌빵구로 올라간다.
이미 돌아가고 있는 서너 개의 불을 보자 아이들은 걸음을 재촉한다.
완벽한 원.
힘차게 돌아가는 동심원 하나에 아이 얼굴 하나 들어앉고
머리 위 다 차지 않은 커다란 달은 아직 여유롭다.
소년은 지푸라기며 나무조각을 깡통에 넣고 옆에서 건네받은 불씨를 넣는다.
천천히 깡통을 돌리기 시작하자 뿜어 나오던 연기가 어느 순간 불꽃으로 변한다.
깡통에 묶인 철사는 팽팽하게 펴지고 다부 쥔 손가락엔 원심력이 전해진다.
멀리 뽀뿌라 언덕에도 불이 돈다. 어림잡아 열 개.
아이들은 불을 돌리면서 뽀푸라 언덕을 향해 소리 지른다.
전쟁하자! 전쟁하자!
언덕에서도 놈들이 소리치는 것 같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틀림없이 전쟁하자는 말이다.
교련복 바지를 입은 동네 형은 말한다.
정말 전쟁을 했다니까.
어른들도 그랬어.
오래된 일이야.
뽀뿌라 애들도, 큰 솥 애들도 모두 같은 국민학교를 다녔다.
운동회 때 같은 백군이 되기고 했다.
크리스마스 때는 교회 공터에서 같은 영화를 보았다.
그러나
대보름 가장 달이 크게 뜬 날.
서로 전쟁을 했다.
그게 달의 영향일 수도 있다. 달 아래 돌아가는 원.
그 안에 붉은 얼굴로 결의를 다졌을 것이다.
어른들로부터 물려받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서로 미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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