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 향교

삶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진지한 문제가 된다.


아무도 없었다.

교동향교의 단정함이 마음에 들었다.















2019. 6. 15 교동향교




조선 초기부터 조정의 중요한 교육정책은 일읍일교(一邑一校)의 원칙이었다. 각지에 향교를 완비하여 후학을 교육시키고자 하였다. 

그런데,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면서도 그에 대한 환경이나 종사자들에 대한 대우는 매우 열악하였다. 각 향교에 파견된 교수관은 종6품의 문관직으로서, 향촌사회에서는 매우 높은 직급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딴판이었다. 현실 속의 교관은 많은 사람이 기피하는 춥고 배고픈 직임었다.... 향교의 교수관으로 가는 것은 유배직으로 인식되었고, 15세 후반 이후로는 향교의 교관직은 빈천하고 무식한 인물들로 충당되는 실정이었다. 교관직은 오히려 수치스런 직책으로 변했다. .... 관학의 부진과 교관직의 천역화가 조선전기에서부터 진행된 것에 비한다면, 사학 학장의 능력과 권위는 비교적 꾸준히 존숭되었다. [조선 전문가의 일생] 中에서 내용 초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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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진지한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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