耳目口心

눈 내린 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했다.
눈은 그쳤고 추웠다. 지나는 사람을 기다려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2025-2-6

 
 
 
캠핑용 작은 철제 밥상에 김훈의 『허송세월』을 올려 두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읽었다. 이 작은 꼴방은 난방을 하지 않는다. 전기난로를 켜면 뜨겁기는 한데, 훈기가 채워지지 않는다.
『허송세월』을 다 읽고 나니 가슴에 공동空洞, 울림이 있는 99%의 공간이 생겼다. 나머지 1%는 유령하는 허무감일 것이다. 맨 뒤의 철모로 만든 X바가지 사진을 보고 '사는 것이 그런 거다.', '행복은 너의 마음속에서..' 류의 글인 줄로만 알았다. 무지한 나의 오만이었다. 
 
다시 읽으면 다른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아직 나오기 전의 이창동 감독의 영화 같았다.
 

■ 거기서 사케를 마셨다. 주모는 허리가 굽은 늙은 여성이었는데, 화장이 너무 짙어서 허무해 보였다. 큰 개를 기르고 있었는데, 개도 늙어서 눈 뜨기를 힘들어했다. 뜨거운 사케의 부드러움이 몸의 바닥에서부터 스며들어 오니까 늙은 주모의 빨간 립스틱이 주는 허무감도 견딜 만했다. 사케는 겨울의 술이고, 나이든 사람의 술이다. ■ 「늙기의 즐거움」 중에서.

 
나는 2012년 8월 31일 사케를 처음 마셨다. '정종'을 마셔본 적은 있는데 '사케'라는 이름으로 내 목구멍을 타고 흘러간 것은 확실히 그날이 처음이다. 
이제는 미완성으로 끝나버린 내인생의 별책別冊이 다시 시작된 날이고, 첫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 남아있기에 객관적으로 존재한 날이다. 그때 나는 여름의 끝, 아직은 젊은 날이었다. 높은 의자에 일렬로 앉은 배치는 생소했지만 비릿한 느낌의 사케는 아주 잘 넘어갔다. 「늙기의 즐거움」을 읽고 사케가 땡겼다. 안주만 정해지면 종이 팩에 든 사케를 사서 한밤을 보내보자는 생각이다. 겨울이고 나이듦의 시작이니 괜찮지 않을까.
 

■ 어린아이들은 길을 걸어갈 때도 몸이 리듬으로 출렁거린다. 몸속에서 기쁨이 솟구쳐서 아이들은 오른쪽으로 뛰고 왼쪽으로 뛴다. 아이들의 몸속에서 새롭게 빚어지는 시간이 아이들의 몸에 리듬을 실어 준다. 호랑이나 사자의 어린것들도 스스로 기뻐하는 몸의 율동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것들은 생명을 가진 몸의 즐거움으로 발랄하고 그 몸들은 신생하는 시간과 더불어 뒹굴면서 논다. ■ 「시간과 강물」 중에서

 
나는 어린 아이들의 몸짓을 이렇게 표현하는 방법을 어디서든 본 적이 없다. 우치다 타츠루 작가의 어느 책에서 어린이를 바라보는 색다른 관점을 읽은 기억이 나서 책꽂이를 뒤져 봤는데 책을 찾지 못했다. 분명히 어디에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강박은 버려야 한다. 기억력이 사라진 것처럼.
 

■ 자유, 평등, 해탈, 초월 같은 개념어들이 지향하는 궁극의 상태는 형용사적 세계일 것이다. '가난함'을 '빈곤'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가난을 모른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겪는 삶은 빈곤 poverty이 아니라 가난함 being poor이고 차별받는 사람이 원하는 세상은 평등 equality이 아니라 평등함 being equal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해탈한 도인들의 자유는 동사나 명사의 세계가 아니라 중생들은 알 수 없는 어떤 형용사적 세계일 것이다. ■ 「형용사와 부사를 생각함」 중에서

 
어렵다. 내입장에서는 '타자화' 이야기 같은데, 모르겠다. 그러나 빈곤이 아니라 가난함으로 썼을 때 그 양태가 다르게 느껴지기는 한다. 사전적 의미를 따라가서는 그 깊이와 넓이를 어떻게 다룰지 알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모든 편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두고두고 읽어볼 책이라고 본다. 명불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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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없다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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