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1. 이웃 블로거의 "소주값 6,000원 시대"를 읽었다.

신문 기사 검색을 해보니 과연 소주값 6,000원 시대가 현실화할 전망이라고 한다.

소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어제 오이도에서 따라 온 몸살기운을 껴안고 편의점으로 내려갔다.

1,950원 하는 그때처럼 처음처럼 한 병을 사왔다.

술이 평소 보다 훨씬 달았다. 몸도 달달하게 달아오르며 성질도 났다.

소주 한 병 6000원 이라니... !!

 

학교 다닐 때 이런 노래가 있었다.

 

한국에서 한국에서 술마시는데

양주 한 병 이만오천원.

아고야 비싸서 난 못먹네.

소주 먹겠네 막걸리 먹겠네

니가니가 양주 마시나 

내가내가 소주 마시나

우리하게(얼큰하게) 째리는 건 (취하는 건) 마찬가지지~

 

2023-2-25

 

2절도 있지만 음담패song이라서...

대신에

너무 도덕적이라서 실천하기 어려운 말만 모아 놓았다는《명심보감》에 등장하는 술을 보자.

원문과 풀이는 '전통문화연구회' 동양고전종합DB에서 갖고왔다. 

 

少, 話不投機,  多. 

술은 나를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면 천 잔도 적고, 말은 기회를 맞추지 않으면 한 마디도 많다.

 

술의 역할을 강조한 말이 아니라 시의적절한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그렇지만 혼술 보다는 친구와 마시는 술이 좋다는 것은 고금의 진리이다.

 

다음은 이 블로그에서 몇번 인용한 내용이다.

 

史記曰, 郊天禮廟, 非酒不享. 君臣朋友, 非酒不義. 鬪爭相和, 非酒不勸. 故 酒有成敗而不可泛飮之.
《사기》에 말하였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사당에 제례 올림에도 술이 아니면 祭物을 올리지 못할 것이요, 임금과 신하 그리고 벗과 벗 사이에도 술이 아니면 의리가 두터워지지 않을 것이요, 싸움을 하고 서로 화해함에도 술이 아니면 권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술에 성공과 실패가 있으니 함부로 마셔서는 안된다.

 

공식 행사(제사 및 제례), 사회 생활 및 정치에 술이 중책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글이다. 술은 신령과 통한다고 하여 귀하게 취급했다. 그래서 대소사를 막론하고 중요한 의식, 절차에는 술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함부로 마셔서는 안되는 것이니..

함부로 술 값을 올리는 것일까???

 

한국에서 술집에서 

술마시는데

소주 한 병 육천원~

아고야 비싸서 못마시겠네.

집에서 먹겠네~ 혼술하겠네~

 

 

2.《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교유서가. 2016.

2021. 7. 28

 

로저 에커치라는 사람이 썼다.

1/3 쯤 읽다가 말았다. 책을 읽다보면 서구의 여러 고전에서 등장하는  밤 장면이 떠오른다. 64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참고문헌 약어 일람이 p469~ p612 에 해당하니 어마하다. 참고문헌을 옆에 끼고 하나하나 옮기는 밤샘 작업을 했을까? 

나는 그저 까막눈이라...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표지를 디자인한 출판사 센스가 특별하다. 물론 그때문에 구입한 것은 아니다.

표지의 그림은 '헤리트 반 혼트호르스트(1590∼1656, 네덜란드)'라는 사람의 작품으로 제목은「뚜쟁이」,「중매쟁이등으로 검색된다. 

나는 유튜브의 섬네일 같은 표지라고 생각했다.

 

몇 년 전 유사역사(사이비역사)에 관심을 두고 이곳저곳을 섭렵할 때 많이 본 구절이 '잃어버린' 이다. 그들의 주장은 영화《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008》의 내용과 비슷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것은 판타지.

잃어버렸다고 하면 복원할, 찾아야 할 가치가 있는 무엇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그 주장에 힘이 실리지만 내 느낌에는, 뭘 자꾸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은 바보같다.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의 저자에게도 할 말이 있다.

"지구의 자전이 멈추지 않는 한, 밤은 반복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밤을 즐기고 있으며 무수히 많은 일들이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몰랐던 것은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냥 몰랐던 것이지요." 

 

 

3. 여전히 특정 시대의 뭔가를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혹시 잃어버린 것이 이거?  누가? 

2023-2-12

 

저것은 (얼핏) 주장,구호로 보이지만 내 눈에는 걍 향수로 읽힌다. 

피아彼我 또는 아我와 비아非我가 분명해 보이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 말이다. 피아구분이 명확하다고 해서 좋은 세상이며, 불분명 하다고 해서 나쁜 세상이 아니다. 모호함은 원래 세상의 본질이다.

문제는 선생인가? 노동자인가? 로 연결 시키는 논리의 부재다. 그것은 선생과 노동자에 대한 비하로 읽힐 수 있으며,  노동에 관한 관점 보다는 정치적 입장이 큰 탓이다.  교수노조도 있고 공무원노조도 있음을 상기하시라. 국제교원노조총연맹에는 170개가 넘는 국가가 가입되어 있으며 전교조와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가입이 되어 있다는 상식도 전해 드린다. 

달리 할 말이 없다. 그저 자유를 만끽하시라. 마치 자유가 자유롭게 된 시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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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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