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문자

잔뜩 찌푸린 출근길에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P는 운전 중 잠깐 한눈을 팔아 그것이 부고임을 알았다.

 

고등학교 3학년.

P는 약간 퉁퉁한 몸매에 수염이 짙었던 친구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친구일까?

 

자동차는 크게 우회전했다.

낙엽이 우루루 놀라며 길 옆으로 비켜섰다.

 

2020-11-18

 

 

 

동문회는,

회비를 내고 동문회 명부 앞쪽에 명함이 삽입되는 것은,

자신 같은 일개 서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같이 지내다가 동문임을 알게된다거나, 알고보니 꽤 괜찮은 사람이라면 친하게 지낼 수도 있겠지만 '회會'에 이름을 걸어놓는 것는 P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동문회에서 문자가 오는 것은 P에게 평생 잊지 못할 경험과 추억, 도움을 주었던 한 친구를 찾기 위해 동문회 사무실에 전화를 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도 P와 삶의 스타일이 비슷했는지 연락처를 알 길이 없다는 동문회 측의 답변을 들었다.

 

"선배님, 혹시 연락처를 알게되면 나중에라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 번호를 남겨 놓을까요?"

 

누군지도 모르지만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후배에게 그러라고 했다.  이후로 P는 가끔 낯익은 이름들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느 친구의 정계 진출 소식, 회사를 그만두고 투자회사를 차렸다는 소식, 복어 전문횟집을 열었다는 소식,  소소한 진급 소식...

P에게 동문회 소식은 스스로의 생활 수준을 가늠하거나 또는 친구의 삶에 대한 어떤 망상을 일으키는 뉴스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P는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고 어떤 일이건 적극이라고 할 만한 일이 없었다. 도움을 받은 친구를 찾아 나선 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친구들 모임에 찾아 간다는 상상만 할 뿐이지 실제로 나선 일ㅇ은 없었다.

 

P는 주차를 하고 문자를 다시 열었다.

OO고 동기인 OOO군이

10년간의 오랜 투병생활 끝에

11월 7일 밤 10시경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래 ; 빈소, 발인

 

P는 문자를 받은 처음에 떠오른 그 친구가 맞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랬더니 친구의 목소리까지 기억나는 느낌이 들었다. 우중충했던 날씨가 조금씩 개였다.

죽음에 대한 언급은 더이상 금기의 영역이 아니라고 P는 생각했다. 다른 누구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로 생각해도 지나칠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10년은 좀 길군 그래.

나라면 10년을 버티지 않았을 것 같군.

그렇지 않나?

당장 죽는 날이 내일이라면 너는 어떻게 할거지?

 

그는 자답할 것이 없었다. 오늘이 아니면 그만이라며 생각을 접었다.

회사 입구에서 누구를 만날까 잠시 두리번 거렸다.  좋은 아침~ 이라며 누군가 인사를 건넬까 싶어서 재빨리 회전문을 통과했다.

P의 책상은 어제 퇴근 때와 토씨하나 다른것이 없었다.

이미지 맵

별거없다

▒▒▒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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