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K씨의 짧은 의식

 「그래, 자네는 내일 어디로 갈 참인가?  전에처럼 성지 답사라도 할 건가?」
「하하, 답사라니. 」
「그렇군. 답사는 아니군. 차라리 참배라고 해야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이야 평범하게 살뿐이지만, 평범이 또 뭔가?
보통 사람들 운운? 아니지. 그건 태도를 말한다고 봐.  
말하자면 말이든 행동이든 생각이든 진폭이 크지 않다는거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노력했으니까 결과를 기다려보라는 말이나,
최선을 다하라는 말보다는  차라리 행운을 바란다고 말하는 것이 낫다고 봐. 」
 
K는 그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가서 간절한 척 소원을 빌 참이야. 아니 행운.」
「신자도 아닌 자네가 신에게 소원을 빌면 신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회개할 것이라면 사찰로 갈 것이네.
어쩐지 그곳의 신은 여기까지 올 것이 뭐냐고 할 것 같으니까.  
그냥 그게 인생이니까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할 것 같다는 말이지.
그러니 행운을 빈다면 성지로 가야겠지.. 」
「그거 재미있구만. 그렇지만 지독히도 이기적인 데다가 불경스럽군.」
「지독히도 인간적이기도 하지.」
「그런데 교회나 성당이 아니라 하필 성지인가? 세속과의 거리 때문인가?」
「그렇지,  주차가 쉽지 않은가」
 
남아 있는 가을의 끝은 겨울과 교묘히 연결되어 서 있는 나무, 전봇대,
푸른색 대문 등등이 빗속에 걸어가는 패잔병들처럼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성지의 하얀색 예배당은 우중충한 날씨에 더욱 희게 보였다.  
K씨는 주차를 한 뒤, 버적이는 파쇄석을 밟으며 양초 매대로 갔다.
큰 것과 작은 것의 값이 다른 것을 보고 K씨는 코웃음을 쳤다.
'비싸지도 않은 것을 왜 크기를 달리했을까.'
K씨는 5천 원짜리 한 장을 함에 넣었다.
'두 개를 꺼낼까?  그래도 천 원 더 넣은 셈인데...'


K씨는 오른쪽에 서있는 성모상을 힐긋 보더니 이내 노란색 양초 하나만 들고
오른쪽에 마련된 점촉 상자로 향했다.
K씨는 주머니를 다시 뒤져 라이터를 찾다가 상자 안에 성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 그렇지.  초는 성냥을 그어서 붙여야지..'

 
초는 심지가 길어서 불꽃이 곧장 위로 솟았다. K씨는 무슨 일인지 초를 한 손에 들고 머뭇였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잠시 뒤에 K씨는 이미 세로로 켜져 있는 초에 맞춰 제일 높은 곳에 초를 세웠다.
그리고 시험장에서 진땀 빼고 있을 아들 녀석을 떠올리며 행운을 빌었다.
K씨는 이 과정이 어색했다.
시간이 너무 짧았고 자신이 머릿속에서 그려본 것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K씨는 유리문을 다시 열어 양초를 아래쪽 분홍색 양초 옆으로 옮겼다.  
그래도 이상했다. 순서, 또는 위치가 잘못된 것 같았다.  
K씨는 어쩐지 스스로가 주체인지 객체인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K씨는 미진한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버적이는 소리를 내며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K씨의 뒷모습을 성모가 그예 무심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성모상 아래에는 그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구가 있었다.

성모님!
저는 기도할 줄 모릅니다.
저의 마음을 이 초에
담아 바칩니다.
저와 저의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이미지 맵

별거없다

▒▒▒ nothing

    '소품'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