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선

2023-12-16

 

 

- 간월암 가는 길

 

'여기'에는 관광버스 맨 뒷좌석을 다투지 않는다.

어쩌면 맨뒷좌석에 대한 낭만을 즐기려는 자가 나 혼자 뿐일런지도 모르겠다.

자꾸만 흐려지는 버스 차창을 계속 닦았다.

다시 물기가 흐르기 전에 렌즈를 창에 붙이고 여러 장을 찍었다.

흐리다. 초점이 맞지 않는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이것이 내 세계世界임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처리하면 될듯합니다." 수십년 공밥 짬은 확신을 뱉지 않는다.

아니다. 확신 따위가 필요 없는 곳일지도.

 

어느 유튜브에서 아래의 글 일부를 띄워놓고 진행되는 강연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전문을 찾았다.

 

제목이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다.

 

습관의 노예가 된 사람

매일 똑같은 길로만 다니는 사람

결코 일상을 바꾸지 않는 사람

위험을 무릅쓰고 옷 색깔을 바꾸지 않는 사람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지 않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이다

 

열정을 피하는 사람

흑백의 구분을 좋아하는 사람

눈을 반짝이게 하고

하품을 미소로 바꾸고

실수와 슬픔 앞에서도 심장을 뛰게 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보다

분명히 밝히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일과 사랑에 행복하지 않을 때

상황을 역전시키지 않는 사람

꿈을 따르기 위해 확실성을 불확실성과 바꾸지 않는 사람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합리적인 조언으로부터 달아나지 않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이다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 책을 읽지 않는 사람

삶의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

자기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자존감을 파괴하고 그곳을 에고로 채운 사람

타인의 도움을 거부하는 사람

자신의 나쁜 운과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에 대해

불평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계획을 포기하는 사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 묻지도 않고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이다

 

우리, 서서히 죽는 죽음을 경계하자

살아 있다는 것은

단순히 숨을 쉬는 행위보다 훨씬 더 큰 노력을

필요로 함을 늘 기억하면서

 

오직 불타는 인내심만이

멋진 행복을 얻게 할 것이다

 

작자는 브라질 출신의 시인이자 언론인이라고 한다.

브라질에서는 '서서히 죽어간다.'는 함의가 어떤지는 모르겠다.

나는 '서서히 죽어간다'는 것은 비극, 또는 어리석음.

좀 더 펼치자면 [눈 앞의 쾌락, 즐거움에 빠져 위기가 닥치는 것을 알지 못하는 태도. 또는 삶의 자세] 정도가 일반적인 뜻으로 본다. 부중지와 釜中之蛙.

칼이나 총에 맞아서, 중독이 되어서 천천히 죽어가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마지막 구절,

"오직 불타는 인내심만이

멋진 행복을 얻게 할 것이다" 를 읽자마자

훌쩍 삐딱선을 탔다.

메모장을 빼들어서 이렇게 썼다.

 

"이건 뭐 독설이군."

 

불타는 인내심도 어색하고, 멋진 행복을 얻게 한다는 것도 어색하다.

서서히 죽지 않는 것이 멋진 행복이라는 말인가?

번역이 문제일까?

삐딱선을 노저으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것이 정말 서서히 죽음을 부른다면,

 

습관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고 급급해 하는 사람

.....

여행에 급급해 하는 사람

독서에 급급해 하는 사람

....

급급해 하는 사람...

 

급급해 하는 사람으로 바꾸면

등식이 성립되는 거 아닙니까? 하고

 

A = a

 

행복과 꿈, 열정과 실천으로 윽박지르는 독설.

내게는 전혀 공감되지 않는,

지금의 이 글과 같은 수준의 잡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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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없다

▒▒▒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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