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석남을 꽂고

 

유튜브가 (고)노회찬 의원의 영상을 골라줬다.

때가 때인지라,

정치 쪽 뉴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차에

이 영상은 나에게 깊은 내상을 입혔다.

아님 아물어 가던 상처가 다시 터진 것이겠지.

 

당시 이분의 투신 소식에 화가 많이 났다.

도대체 왜 ..

한동안 뉴스를 끊고 살았다.

 

영상에는 (고)노회찬의원의 걸걸한 목소리가 있었다.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내가 죽으면..."

 

 

도무지 감정이 갈무리되지 않았다...

흐느끼다가 오열할 지경으로 그 노래는 지독히도 슬펐다.

 

20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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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석남을 꽂고》

                  首揷石枏

 

남자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러나 부모는 그 만남을 금지하였다.

남자는 몇개월 동안 여자를 만나지 못하다가

그만 갑자기 죽고 말았다.

 

(죽은 지) 8일이 지난 한밤중,

(귀신이 된) 남자는 여자를 찾아갔다.

여자는 남자가 죽었다는 것을 모르고 기뻐하며 그를 맞이하였다.

남자는 머리에 꽂고 있던 석남 가지를 나누어 주며 말했다.

 

"부모님이 당신과 같이 살아도 된다고 하셨소.

그래서 당신을 데리러 왔소. 우리집에 갑시다."

 

드디어 둘은 함께 남자의 집에 도착했다.

남자는 담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밤이 새고 새벽이 되도록 소식이 없었다.

 

남자 집에서 사람이 나와서 무슨 일로 왔냐고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는 지난 밤 이야기를 했다.

"그는 죽은지 8일이 되었소. 오늘이 장례인데 무슨 괴상한 말이오?"

"그이가 찾아왔어요. 저에게 석남 가지를 줬어요.

제가 꽂은 걸 보세요. 그이가 준 거예요."

 

남자 집에서는 결국 관을 열어 보기로 했다.

과연 시신의 머리에 석남이 꽂혀있었으며, 이슬에 옷은 젖고 신발도 닳아 있었다.

여자는 남자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통곡하다가 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남자가 되살아났다.

이들은 이십년을 해로하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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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야기다. 짧은 한문으로 전해진다.

 

1. 《수이전》에 수록된 것을 최문해(조선)라는 사람이 《대동운부군옥》에 옮긴 것이다.  《수이전》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2. 주인공은 최항이고 신라新羅 사람이다.  나는 그냥 '남자'라고 했다. 그게 더 상상에 유리하다고 보았다.

3. 흐름을 살려 내 뜻대로 풀이한 곳이 있다. 그러나 원문에 충실하고자 했다.

4. (고)노회찬 의원의 노래는 서정주의 시 詩에 곡을 붙였을 것이다. 서정주 시 역시 '수삽석남' 이야기에서 갖고 온 것이다. 시에서는 '석남꽃'이라 했다.

5. 한문은 石枏(석남), 石枏枝(석남지)로 나온다.  '석남 가지',  '석남꽃'  둘 다 괜찮다고 생각한다.

6. 내가 본 판본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있는 pdf 파일이다. 거기에는 '20년을 해로'했다고 나온다.

7. 30년을 해로했다(같이 살았다) 등의 풀이는 다른 판본에서 갖고 왔을 수 있다.

 

짧고 특별할 것이 없는, 처음 - 끝으로 가는 평범한 설화일 수 있다.  그러나 빈 곳과 단순한 이야기는 우리의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스토리는 공백을 용납하지 않는 법이니까.

 

죽어서도 연인을 잊지 못하는 남자가 (무슨 일인지) 석남 가지를 꽂고 나타났다.

그리고 여자의 슬픔을 남겨두지 않고 소생하여 함께 남은 생을 보냈다.

해피엔딩. 죽음과 소생, 만남과 이별, 행복한 결말.

 '있었으면 좋을 세계' 는 몇 천년이나 몇 쳔년 뒤에도 바뀌지 않을 사람들의 바람일 것이다. 서정주의 시가 갖고오고, 다시 노회찬의 목소리가 전하는 그 바람.

나눠진 석남 가지는

슬픔이 아니고 희망, 주검이 아니라 소생이 되었으면 한다.

첫머리의 내상 운운한 것이 기껏 낭만에 머물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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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이야기....

 

석남(石枏)은 무엇인가?

 

정리하자면.. 매화꽃 가지, 만병초라는 설명이 많다.

〈한어대사전〉에는 石枏, 石南을 식물이고 약재로 설명하고 있다.  石枏과 石南은 같다. 여기의 설명은 아마도 만병초로 보인다.

매화꽃 가지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이다. 아마 한자의 뜻으로만 풀이한 것 같다. 

처음에는  '남(枏)' 이 '녹나무'인 것에만 주목했다. 관을 만들 때 사용되고 향이 있다는 자료를 보고  '죽음'과 가까운 상징물처럼 보였다. 

'머리에 꽂는' 행동과 죽음의 이미지를 상상해 보았지만... 

신라 때의 이야기다.  어느 산이고 바다고 신령과 용왕이 살던 보편의 시대다.

현대의 사전적 의미로  그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상징한다는 것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생사를 이어준 꽃이라는 것.

 

만병초 관련 자료에서 다음 기사를 찾았다.

여기에도 만병초가 나온다.

지도자는 잘 뽑아야 한다.

선택은, 최선은 아닐 지라도 최악은 피해야 한다.

평화와 공존을 기원한다.

겨우 5년전 일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180920121000001

 

[평양정상회담] 문대통령 "새 역사 썼다"…김위원장 "천지에 새 역사 담그자" | 연합뉴스

(백두산·서울=연합뉴스) 공동취재단 이신영 기자 =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부부는 20일 백두산 정상에 함께 올랐다.

ww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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